진주 명석 자웅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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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진주 명석 자웅석(晉州 鳴石 雌雄石)은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 위치한 남녀 한 쌍의 성기 모양 암석입니다. 1988년 12월 23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.
형태:
- 숫돌: 높이 85cm, 바닥 지름 63cm, 둘레 220cm로 위가 볼록한 모양입니다.
- 암돌: 높이 75cm, 바닥 지름 55cm, 둘레 160cm로 여자가 족두리를 쓴 형태입니다.
유래 및 전설:
- 명칭: '운돌' 또는 '명석(鳴石)'이라고 불리는데, 이는 '우는 돌'이라는 뜻입니다.
- 전설: 고려 말 왜구(혹은 몽고)의 침입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쌓을 때, 성돌이 되기 위해 스스로 굴러오던 한 쌍의 돌이 성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그 자리에 섰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.
- 보국충석: 이에 감복한 승려가 나라에 충성하는 돌이라는 뜻으로 '보국충석(輔國忠石)'이라 칭하고 아홉 번 절을 했다고 합니다.
- 구배곡/구복동: 돌이 굴러온 골짜기를 구배곡(九拜谷) 또는 구복곡(九伏谷), 마을을 구복동(九伏洞)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.
- 두사충의 시: 이 소식을 들은 중국 명나라 문인 두사충(杜思冲)은 자웅석찬(雌雄石讚)이라는 시를 지어 감동을 표현했습니다.
현재:
- 명석각: 1973년 마을 주민들이 명석각(鳴石閣)을 짓고 원래 위치에서 옮겨와 보존하고 있습니다.
- 제사: 매년 음력 3월 3일에 호국충절을 기리고 풍농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냅니다.
- 의의: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던 민간 신앙의 대상물이 나라를 지키는 호국 신앙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예입니다.
명석각 제향:
- 명석면의 지명 유래가 된 자웅석을 기리는 제사로 '운돌제사' 또는 '울돌제사'라고도 합니다.
- 음력 3월 3일에 지내는 동제(洞祭)입니다.
- 원래는 마을 단위의 제사였으나, 명석각 건립 이후 호국신앙이 가미되면서 면 단위의 제사로 확대되었습니다.
'라고도 합니다.
- 음력 3월 3일에 지내는 동제(洞祭)입니다.
- 원래는 마을 단위의 제사였으나, 명석각 건립 이후 호국신앙이 가미되면서 면 단위의 제사로 확대되었습니다.
진주 명석 자웅석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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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본 정보 | |
이름 | 진주 명석 자웅석 |
한자 표기 | 晉州 鳴石 雌雄石 |
유형 | 민속문화재 |
지정 번호 | 12 |
지정일 | 1988년 12월 23일 |
주소 |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산278 |
관리 | 보존위원회 |
수량 | 2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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